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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 "인생 사랑 행복이 좋다고 하니 나도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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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인생 사랑 행복이 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 


“그대도 그런가요? 사실, 나도 그래요.”라는 한마디. 마음으로 다가서는 공감과 위로는 유난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나와 같은 마음, 너와 같은 생각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자꾸 무언가를 더하려는 욕심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섬처럼 멀리 떨어진 채, 여전한 일상을 견디다 보면 문득 “너도 그렇다”고 말해줄 누군가 그리워지곤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온 국민이 애송하는 시, 《풀꽃·1》에 놓아둔 나태주 시인의 마음도 그러 하지 않을까?


글 이성주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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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마음 여름이 한창이던 날, 경부고속도를 타고 공주로 향했다. ‘고속’이라는 속도감과 ‘한창’이라는 계절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데. 두 단어가 묘하게 닮았구나 싶었다. 젊은 어느 날은 내달리듯 살았고, 그러는 동안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간 시간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한창이던 시절은 저물었고, 빠르게 꾸던 꿈도 이젠 희미해졌다. 창밖을 향한 시선을 되돌려, 가방 속에 넣어둔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꺼냈다. 사람들이 아끼는 시를 보듬어 모아 펴낸 시집, 그 속에 놓인 시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곱게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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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봉황로 나지막한 산허리에 자리 잡은 ‘풀꽃문학관’. 이곳은 나태주 시인이 시를 짓 

고, 사람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시인의 시 〈풀꽃〉을 기념하여 지난 2014년 10월 공주시가 설 

립한 문학관이다. 생존하는 문인의 이름을 문학관 이름으로 짓지 않는 것이 세상의 불문율, 그

러니 온 국민이 애송하는 시 〈풀꽃〉으로 그 이름을 삼은 셈이다. 하늘과 땅, 그사이에 놓인 문 

학관은 193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의 날을 맞이한 것도 한참, 고

택은 시인의 시로 치유된 듯 이젠 평온한 모습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은, 마침 광복절. 시인은 오

전부터 방송 촬영 중인데. 연이어 사람을 맞이한다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시인은 

《PEOPLE 365》독자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주었고, “인생과 사랑, 행복”을 주제 삼아 찻잔을 놓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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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처럼 가까운 곳보다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지요. 와서는 잠시 둘러보기도 하고, 더 

러는 내 이야기를 듣거나 풍금 반주에 맞추어 동요 몇 곡을 부르기도 해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사람들. 그 말을 들어보면 사는 일에 지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고 하는데. 

몸보다 마음이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을 바라보면서 ‘위로와 도움, 응원이 필요하겠구나.’ 

싶더군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풀꽃문학관이 그런 곳’이라는 말을 남길 때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았구나 싶지요. 나는 조그만 시인이니, 크고 거창한 말보다 힘든 이들을 보듬고 위로하는 시. 어렵고 까다로운 시가 아니라 쉽고, 소박하게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를 지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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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에 시인은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을 읊조리듯 부른 뒤 말을 이었다. 노랫말이 구슬픈건지, 시인의 목소리에도 어떤 상념이 담겨 있는 듯했다.   

“배호라는 가수가 있어요.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노래 

부른 사람이에요. 사실 우리 인생은 아름답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아름답지도 않고, 행복하

지도 않고, 좋지도 않아요. 그런데 거기서 끝내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런 마음은 다른 사람의 방식이 아닌, 내 노력으로 해야만 해요. 그렇게 그동안 지은 시가 아름답게 보려는, 행복하게 보려는, 좋게 보려는 결실인 셈이고, 이 세상의 시인들은 그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겠지요 .”

시인은 인생을 대할 때 “단순하고 솔직하고 소박하게 맞이하면 자연스럽게 욕심에서 멀어져 

요. 그러면 내 마음속 다툼도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생각이나 마음을 덧칠하면 힘들어져요.”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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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너도 그렇다’ 공감하는 마음 사람도 사랑도,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어떤 ‘마음’이 있는데. 《풀꽃·1》이 사람들의 눈에서 입으로, 다시 가슴에 새겨지는 건. 마지막 시구 “너도 그렇다”는 공감의 한 줄 때문이라 여긴다. 시인은 <풀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몽골, 터키 등에도 알려졌다고 말한 뒤. 아프리카 대륙의 알제리에서도 알려진 사연 하나를 들려준다.  

“샤히라는 알제리에 사는 젊은이인데. 한국인 펜팔 친구 핸드폰 프사 이미지로 《풀꽃·1》을 접했다고 해요. 그 뜻을 알고 싶어서 한글을 공부한 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더

군요. 그녀는 첫 시구에서는 슬픈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 시구에서는 더 슬퍼졌는데. 

마지막 ‘너도 그렇다’에서는 행복해졌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나는 그때 그 사람으로부터 커다란 용기를 선물 받았어요. 시란 그렇게 국경과 인종을 넘는 힘이 있구나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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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이야기는 생명처럼 태어난 원인과 이유가 있는데. 그렇다면 《풀꽃·1》은 시인의 마음에서 어떻게 나와 세상에 꽃피웠을까?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시는 내가 초등학교 교장일 때 지었어요. 아이들은 달처럼 양면성을 지녔어요. 말썽꾸러기가 있는가 하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구석도 있지요. 사실은 ‘풀꽃’이란 시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그 반대인 아이들을 위해서 지었어요.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교정 화단에서 풀꽃 그리기를 했는데. 귀찮은지 제멋대로 그려 오길래. ‘얘들아,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단다’라고 여러 차례 잔소리 비슷한 말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얘들아, 너희들도 그래’라고 말했지요. 그 말들을 거두고 보듬어서 시로 쓴 것이지요. 그때가 2002년도예요. 그러다가 2012년 광화문 글판에 시가 올라갔지요.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그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풀꽃을 보았는데. 가족들 생각에 차 안에서 많이 울었다고…. 사랑이란 그렇게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어떤 공감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이들에게 건넨 말들이 시로 피어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시인의 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공유하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선물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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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동행하고 나누어야’ 커지는 마음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네루다는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라고 그가 지은 ‘시’에서 말한다.  

낭만 시에서 민중 싫어 거듭나기까지 네루다에게 시란 사랑과 투쟁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운 

명처럼 다가와서 평생 동행한 시. 나태주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

시란 마당을 쓸고, 꽃이 피고, 누군가를 사랑 하는 일.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행복이란 혼자 독차지하는 욕심이 아니라,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평생 동행하면서 나누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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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내 기준을 잣대 삼아 누군가를 재단하고, 이분법적으로 너와 나를 가르고, 내편과 네 편을 구분 짓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들고, 결국에는 벽을 세워요. 넘

어오지 말라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그런대로 진실과 거짓이 제자리를 지켰고, 진실이 더 큰 힘 

을 지녔는데. 요즘은 세상 모든 가치 판단이 진위(眞僞)에 있지 않고, 호오(好惡)에 있는 듯 보여

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나한테 좋은가 싫은가부터 따지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상처받고, 불행의 늪에 빠지고 말아요. 나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나 삶의 태도를 선호하지 않아요. 사람이 기준이고, 사랑과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할 뿐이지요. 행복하려면 ‘위로와 축복, 기도와 동행’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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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사진기자와 함께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시인과 나눈 이야기를 길동무 삼았다. 며칠 동안 시인이 부른 노래와 읊조리듯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원고를 쓰면서 책상머리에 붙여 놓은 글 하나를 본다. 《파우스트》와 함께 괴테의 인생 작품이라 불리는 《잠언과 성찰》에 놓인 글, “나날의 행복을 정밀한 저울로 달지 마라. 

반면 보통의 저울로 달면 부정확하기는 해도 만족스럽다.”라는 문장이다. 

나는 그 문장 옆에 나태주 시인의 ‘시’를 옮겨 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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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초등학교 교원으로 43년을 살았고, 시인으로 50년을 보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 출간 이래 시집과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 등 100여 권을 펴냈다. 2015년 펴낸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설립 운영하면서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공주문학상 등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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