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온의 가요산책

메마른 가슴을 달래주던 새역사의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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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가슴을 달래주던 새역사의 전주곡


격변의 민족사 속 부산역은 이별과 만남의 역이었습니다. 

상하행선 하루 운행횟수가 평균 40회, 연중 승객은 상하행선 각각 94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수많은 사연을 싣고 달렸습니다. 이 부산역을 대표하던 노래가 바로 〈이별의 부산정거장〉입니다. 1954년 남인수가 부른 이 노래는 한국전쟁 중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부산정거장에서 이별하는 피난민의 애환을 담은 정통 가요입니다. 20여 년 간 1,000곡에 가까운 노래를 불러 국민들의 많은 사랑은 받은 가수 남인수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음의 연결이 듣는 이의 마음을 감싸주고, 소리를 띄우듯이 불러 리듬에 생동감을 주는 특유의 창법은 그 시절의 아픔을 생생히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12열차가 지나는 곳곳마다 눈물과 그리움이 흩뿌려지던 그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글 가수 이세온 사진 《PEOPLE 365》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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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속의 ‘부산’의 의미 

부산은 조선 최초의 개항장이며 근대문물 유입의 창구였습니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유일한 대일외교창구였던 왜관이 바로 부산에 있었고 최초의 개항장으로서 이곳을 통해 근대 문물이 유입되었고 왜관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부산항은 항구와 철도가 연결되어 ‘만주-조선-부산-일본’을 잇는 병참 기지 역할을 했고 해방 후에는 6·25전쟁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피난민들의 천국이자 안식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실제로 1949년에 47만여 명이던 부산 인구가 1951년에는 84만 명에 이르렀고 1955년에는 100만을 넘어섰습니다. 

     887c65536470702f27f249048dea7a5d_1689131448_2686.jpg               <사진출처 : KTV 다시보는 문화영화(흘러간노래)>


그리고 그 피난민들이 현재 중구 일대인 영주동 동광동 중앙동 대청동 일대에 모여 판자촌을 형성했는데 판잣집의 수는 1953년 7월에 28,619호 정도였다고 합니다. 주로 판자 부스러기나 미군 부대에서 나온 상자로 판잣집을 만들다 보니 겨울에는 바람이 들이차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까는 정도로 생활환경은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부대끼며 서로의 아픔을 나눠온 피난민들은 조금씩 전쟁의 상처를 치료해 갔습니다. 부산은 민족상잔의 6·25사변 발발 후 자유를 찾아온 피란민들의 지긋지긋한 생활의 터가 아니라 제2고향이었던 것입니다. 

부산발 12열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직후 1953년 9월 28일,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가 다시 휘날리고 손꼽아 기다리던 고향을 찾아 부산발 12 열차에 몸을 실은 피난민들. ‘12호 열차’라는 이름은 부산에서 저녁 시간대에 출발해서 다음 날 새벽 시간대에 서울에 도착하는 당시의 열차 번호가 12번이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열차는 1990년 3월 15일에 폐지될 때까지 열차 번호만 바뀌며 계속 운행되었고 폐지 당시 열차 번호는 522번이었다고 합니다. 12호 열차는 피난민들의 고단한 몸을 싣고 고향으로 안내해준 친구이자 생각하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편안함을 주던 마음의 의지처였습니다. 최근에 열차 번호 12번은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호가 쓰고 있지만, 2021년에 중앙선 KTX가 개통하며 부산발 서울행 #012 KTX 열차로 다시 생겨 역사를 기억하게 해줍니다. 

     887c65536470702f27f249048dea7a5d_1689132389_8229.jpg                 <사진출처 : 목포 MBC가요센터 트로트>


전쟁이 끝난 후 부산으로 피난살이를 했던 생활을 마치고 고향가는 귀향 열차를 타고 부산정거장에서 이별하는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습니다. 

한과 희망을 노래하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박시춘 작곡, 호동아(유호)작사의 노래로 약 5만여 장을 판매해 1950년대 최대의 판매고를 기록한 노래입니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 가수 남인수가 불러서 부산 피난살이를 소재로 한 노래 중에 가장 인기 있는 곡이 되었던 것만큼 남인수가 명실공히 최고임을 증명했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노래의 전주는 증기 기관차가 내뿜는 연기와 구동에 착안해서 계단식 구조로 만든 폭스 트롯류의 약간 빠른 리듬에 낭랑한 남인수의 목소리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 잡았습니다.

가사 내용은 낯선 부산 땅에서 피난살이를 마치고 피난촌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12호 열차를타고 부산을 떠나면서 부산정거장이라고 표현한 부산역에서 이별을 맞는 순간을 애절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몸부림치며 이별하고 기적마저 슬퍼 우는 절절한 가사 내용과는 달리 노래의 리듬은 빠르고 경쾌하여 희망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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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네이버 한국대중가요 앨범11000>
 

총 3절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1절과 2절은 부산을 떠나는 피난민의 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1절은 피난살이의 생활에 대한 기억을, 2절은 피난살이에서 맺은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3절은 부산에 남은 사람이 떠나는 피난민에 대한 미련을 노래합니다. 또 가사에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피난살이’, ‘판잣집’, ‘경상도 사투리’ 등이 직접 사용하여 당시의 시대 상황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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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은 피난민들이 피난 올 때 철로를 통해 들어온 공간으로 그들에게는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장소였습니다. 피난민들에게 부산은 전쟁을 피해 내려온 피난처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되돌아 가려 하지만 피난 시절을 같이한 사람들과 쌓인 정 또한 애틋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이별의 상징적 지점인 부산정거장에서 피난 시절과 이별하며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모두의 애달픔을 표현하는 가슴 아픈 시대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달래주던 대중가요 

대중가요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었던 한국전쟁(1950~1953)은 냉전 시대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었습니다. 

총 63개국이 군사를 파견하거나 물질적, 재정적 도움을 주며 참전했고 16개국의 수십만 병사들이 목숨을 잃거나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6.25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고, 그 고통과상처가 대중가요 속에 녹아들어 역사가 만들어낸 민족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그 애환을 위로했습니다.  피난민들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준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전선야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 〈삼팔선의 봄〉, 〈꿈에 본 내 고향〉, <전우여 잘자라〉 등은 이 시기에 탄생한 명곡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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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doopedia, 남인수동상 진주시 진양호수공원> 

전쟁의 영향 속에 있던 이 시기에는 전쟁의 상처와 관련된 노래들이 유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아픈 민족상잔의 역사를 다루는 수많은 노래 중에서 당시 부산의 의미를 알려주는 곡이 바로 〈이별의 부산정거장〉입니다. 한때는 〈아와요 부산항에〉, 〈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3곡이라고 불리 울 만큼 부산의 대표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불려 그 시절의 아픔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이 시련을 견디고 현재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회한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또 역사가 만들어낸 민족의 아픔을 흘려보내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의 메마른 가슴을 달래주던 그 시절의 이별가는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역사의 전주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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