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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온의 가요 산책 <짝사랑> 가수 고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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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온의 가요 100年史 <짝사랑> 가수 고복수 


"애국의 교향곡이 된 탄식의 노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은 외롭고도 슬픈 일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지만 못내 마음을 접지 못하고 절망과 한숨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엄혹하던 일제 강점기 시절, 빼앗긴 나라를 짝사랑의 대상으로 빗대어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주던 노래 <짝사랑〉

래는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게 마음을 풀어주고 슬픔을 고요히 흘려보내게 해준 민족의 탄식가 〈짝사랑〉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절망과 비련이 가슴 깊숙이 스며옵니다.

글 가수 이세온 사진 PEOPLE 365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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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공감대가 된 〈짝사랑〉 

“아~  아 ~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가을이 되면 으레 불러보게 되는 곡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우수에 찬 목소리와 절절한 가사로 듣는이의 가슴 속에 애절함과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야욕을 불태우면서 우리나라를 군국주의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시기입니다 . 

강제노역·창씨개명·신사참배·조선육군징집령·정신근로대·종군위안부 등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수많은 수탈을 견디며 몸부림쳐야 했던 암흑 같던 이 시기 1937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민족의 탄식가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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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향사리 앨범>

일제 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비애와 한 사나이의 절망적인 실연을 상징화시킨 이 〈짝사랑〉은 으악새로 은유되는 민초(民草)들의 우수(憂愁)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우수를 고복수는 선천적인 구성진 떨림과 탄식조의 목소리로 표현해냅니다.  

곡의 가사와 가수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결합 된 슬픔과 절망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광복이 된 후 한국전쟁을 지나서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가수 최백호 씨가 최고의 가사라고 극찬하기도 한 이 곡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에 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에 직면해 고독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참모들과 고뇌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즐겨 불렀던 18번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탄식의 목소리

고복수는 1911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울산일신보통학교, 울산내선보통학교,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가수가 되려는 일념으로 60원을 들고 집을 나와서 어렵사리 가수의 꿈을 키우다 1931년 국내 최초로 열린 ‘전국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타향’이라는 노래로 3위로 입상을 하게 됩니다. 

이 곡은 훗날 1934년 ‘타향살이’로 제목을 변경하여 발표되며 그의 가수 데뷔곡이 되고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게 된 신인가수 고복수는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잡지 ‘삼천리’에서 최고인기 남성 가수 투표결과 남자가수 3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1936년에 발표한〈짝사랑〉이 크게 성공하면서 더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 그는 1939년까지 오케레코드사의 전속 가수로서 〈휘파람〉(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1934), 〈사막의 한〉(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1935), 〈그리운 옛날〉, 〈불망곡〉, 〈꿈길천리〉, 〈고향은 눈물이냐〉, 〈풍년송〉(이은파와 듀엣으로 부른 신민요) 등으로 부동의 인기가수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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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복수와 함께한 사진>

고복수는 1958년 은퇴 공연을 할 때까지 20여 년간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 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가지만, 그가 발표한 곡 수는 20년이라는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수 생활에 비춰보면 그렇게 많은 곡은 아닙니다. 계속하여 신곡을 내놓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그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곡은 〈타향살이〉, 〈사막의 한〉, 〈짝사랑〉, 〈풍년송〉 정도였습니다. 그 중 〈타향살이〉와 〈짝사랑〉은 그가 평생을 불렀지만, 대중들은 언제나 빠져들었고,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생활 속에서 부르는 위로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 가슴마다 새겨져 오는 노래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으로 표현된 ‘祖國’의 찬가

<짝사랑〉은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단조 트롯 곡입니다. 

제 식민시대의 트로트 곡들은 이별의 슬픔과 탄식, 타향살이의 설움과 망향, 희망 없는 인생사의 탄식, 방랑과 좌절을 노래함으로써 그 저변에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탄식, 저항의식을 드러내어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심정과 그 쓰라린 심정을 달래고자 했습니다.

〈짝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절의 변화와 이치에 빗대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절절한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짝사랑〉에서 표현된 ‘님’은 고향을 떠나 떠돌고 있는 형제자매나 사랑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통탄해 마지않는 ‘잃어버린 조국’이었습니다. 

당시 2천만 민족 모두의 짝사랑의 대상인 잃어버린 나라를 작사가 박영호와 작곡가 손목인은 아쉬움의 한탄을 담아 민족의 멜로디로 창작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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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복수의 대표앨범>

 <조각달〉은 여울에 비쳐 이지러지고 들국화는 들녘에 떨고 서 있는 임자 없는 꽃이 되었고, 간절한 사랑의 마음은 궁창을 헤매는 서리맞은 짝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짝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괴로운 심정을 일제식민지 통치 아래 생명력을 잃어가던 조국의 풍전등화 같은 운명과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마저 짓밟히던 우리 민족의 처참한 신세로 나타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恨은 항일투쟁으로 이어져 국내는 물론, 만주지역 및 세계 곳곳에서 독립을 외쳤지만, 강물이 출렁이며 먹이 메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살랑살랑 맴을 돌기도 하며, 안개가 되어 후유 후유 한숨만 쉬는 신세가 되고만 것으로 그 절절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짝사랑〉과 〈알뜰한 당신〉으로 사랑받던 가수 부부의 인생사

그러나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애절하게 온 국민의 정서를 만져주던 그의 사랑은 짝사랑만으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당대 〈알뜰한 당신〉, 〈삼다도 소식〉으로 인기가수 반열에 올라 활발한 활동을 하던 황금심(본명 황 금동)과 결혼하여 슬하에 3남 3녀를 두고 연예계에서 그 흔한 스캔들 하나도 없이 잉꼬부부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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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복수, 황금심 부부>

황금심 가수가 열여섯이 되던 이른 봄날. 남대문의 OK 레코드사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의 길고 오랜 인연은 시작됩니다. 그녀가 조선일보에 난 신인 가수 모집 광고를 보고 그 사무실에 들렀고 그 오디션의 가수 심사 위원으로 가수 고복수가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를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간신히 가슴을 가라앉히고 〈노들강변〉과 〈관서천리〉를 불렀는데 어떻게 불렀는지 당시에도 기억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요를 하나 더 부르라는 요청에 당황하여 그의 히트곡 〈짝사랑〉을 부르고 말았는데 이때 그녀는 그의 불길 같은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스타 부부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는 1940년대부터는 무대공연을 위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에게 붙잡혀 끌려갔다가 다시 국군에게 구출되어 군 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후 1957년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그의 25년 가수 생활을 정리하는 은퇴공연을 했습니다. 그 공연에 남인수, 신카나리아 등 가요계의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후 1959년에는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에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학원인 ‘동화예술학원’을 개설했는데 여기서 이미자, 안정애 등의 인기가수가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의 삶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영화 〈타향살이〉를 제작했으나 흥행에 실패하여 서적 외판원으로 일해야 했고, 부인 황금심은 영화주제곡을 부르며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영화제작 실패로 인해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이후 지병으로 1972년에 향년 60세로세상을 떠나고 부인 황금심 씨는 2001년 여름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짝사랑〉에 숨겨진 이야기들

그동안 가사 1 절에 나오는  ‘으악새’ 가 조류인 새냐 아니면  ‘으악새’ 라는 풀이냐에 대한 설이엎치락뒤치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짝사랑〉의 작곡가인 손목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13년에 ‘손목인의 가요 인생’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손목인 선생이 작사가 박영호 선생에게 ‘으악새’가 무슨 새냐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질문에 박 선생은 “고향 뒷산에 오르면 ’으악. 으악‘ 하고 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그냥 ‘으악새’라고 했다고 무심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으악새가 억새라는 주장은 설자리를 잃었습니다.

또 한동안은 〈짝사랑〉의 작사가를 김능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영호가 월북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 이후 월북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시, 소설, 노래할 것 없이 남한에서 금지되었는데 특히 노래는 작곡자가 월북한 곡은 물론 작사자가 월북한 곡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노래의 당사자 즉, 작곡자, 작사자, 가수 중의 어느 한 명이라도 월북 이력이 있으면 그 곡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월북 이력으로 인한 금지곡이 작곡가보다도 작사가에 의한 곡이 더 많았습니다. 작사가들이 대부분 문학가였기에 이들의 문학작품이 금지되면서 노래도 금지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의 사랑을 받던 노래가 그런 이유로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작사자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거나 가사를 약간 바꾸고 해서 노래를 살리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짝사랑〉은 작사자가 월북 작가기 때문에 당연히 금지곡으로 되어야 했지만, 계속해서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이 노래를 살리기 위해, 음반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작사자를 1930년대 말에 이미 사망한 김능인 작사가로 바꾸어 놓았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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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사랑 가사>
 

외로움과 상처를 쓰다듬는 애국자들의 교향곡

가을이 되면 으레 불러보게 되는 곡.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을 우수에 찬 목소리와 절절한 가사로 듣는이의 가슴 속에 애절함과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고복수의 〈짝사랑〉. 물론 ‘30년대 중, 후반에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박시춘, 이재호, 김해송과 같은 천재 작곡가들의 곡을 받은 김정구, 남인수, 백년설, 진방남, 고운봉 같은 신진 가수들이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같이 하는 주옥같은 명곡을 내놓음으로써, 또 새로운 가요사의 장을 열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70년이 훨씬 지나 역사적 아픔을 흘려보낸 지금, 당시 국민들의 설움을 노래하고 아픔을 달래주던 우리 민족의 한 서린 그 곡조는 가슴을 터놓고 소통하는 이곳저곳에서 아직도 들려옵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외로움과 쓰라린 상처를 쓰다듬는 〈짝사랑〉의 노랫가락에 빗대어 민족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한 애국자들의 교향곡인 〈짝사랑〉은 그렇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위로를 건네는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 백과사전, 위키백과,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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