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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푹빠진 안나예이츠 - 국악이 지루하다고? "제대로 접하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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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YATES -LU  

                   판소리에 빠진 안나예이츠

  국악이 지루하다고?   

 제대로 접하면 달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는 3명의 외국인 교수가 있다. 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다른 학과도 아닌 ‘국악과’ 교수다.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독일인 안나 예이츠(Anna Yates-Lu)는 31세 나이로 서울대 국악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의 전공은 음악인류학이다. 지역별, 민족별 고유의 음악을 사회적·문화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직접 국악을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예이츠 교수의 국악 사랑은 ‘찐’이다. 국악 중에서도 ‘판소리’에 푹 빠졌다. 판소리를 접한 후 전공을 바꾸고 진로를 틀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인 민혜성 명창의 제자가 됐고 서울대 교수가 됐다. 판소리의 무엇이 그녀의 인생을 이토록 극적으로 바꿔놓았을까?


글 김도현기자  사진 김성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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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충격판소리,

뜻은몰라도단번에느낌

예이츠 교수는 독일 남부의 도시 뮌헨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모국인 영국으로 유학해 인류학을 공부했다. 판소리를 처음 접한 건 정치학 석사 과정에 있던 2013년 1월 즈음이다. 저렴한 티켓 값에 혹해 주영한국문화원이 마련한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갔지만, 그날의 공연은 운명이 됐다.

“영어 자막이 있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자막을 보지 않아도 소리와 몸짓만으로 모든 스토리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토록 표현력이 뛰어난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문화 경험이었죠.” 이후 그녀의 과제 주제는 온통 ‘판소리’였다. 같은 해 9월 석사 논문을 제출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판소리 공부에 몰두했다. 박사 과정 전공은 진작 음악인류학으로 점찍은 터였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면서 판소리를 보고 배우고 연구하며 한편으론 한국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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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류학은 체험과 관찰이 중요시되는 학문이다. 2014년 9월 마침내 현장 연구를 위한 1년간의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한 다리 건너 소개로 얻은 거처가 마침 대학로 근처였다. 매일같이 그 거리를 누비며 판소리 관련 공연을 죄다 관람했다. 공연 후엔 대기실을 찾아 소리꾼과 만남을 청하고 인터뷰를 하며 논문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민혜성 명창도 만났다. 선생은 인터뷰 대신 대뜸 북채부터 잡았다. 필요하다면 스승이 되어주겠노라 제안했다. 예이츠 교수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제대로 판소리를 배울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을 만나고 제자까지 됐으니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소리꾼이라면 누구든 멋있어 보이고 우러러봤지만 정작 선생님이 그렇게 대단하고 유명한 분이란 사실조차 몰랐죠. 하루가 멀다고 찾아가 판소리를 배우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에게 있어 민혜성 명창은 그냥 판소리 선생님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인생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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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의삶과

국악의미래를연구하는외국인

한국에서의 현장 연구가 끝나갈 무렵인 2015년 6월. 그녀는 학회 참석차 프랑스에 갔다가 현지에서 열린 ‘K-VOX Festival(한 국소리페스티벌)’에 참가해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독학하다시피 판소리를 익혔는데 나는 명창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섰으니 사실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죠. 1등이란 성취감보단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판소리 열정을 이어가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판소리는 한국인들에게도 어려운 분야인데 외국인으로서 배우는 게 힘들진 않았을까? 언어의 장벽마저 뛰어넘은 그녀는 “한국에 머물지 않는 한 마음껏 판소리를 배울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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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연구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그간 간혹 있던 판소리 공연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스스로 남들 앞에 내세울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판소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였다. 한국의 스승님을 모셔와 판소리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더러 판소리를 배워보겠노라고 찾아온 이들은 스승님의 허락을 구해 기꺼이 거둬들였다. 그나마 자신이 아니면 좀처럼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제자 중엔 제대로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한국을 찾은 이도 있다.

예이츠 교수가 참가해 1등 상을 받았던 한국소리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한국어 강사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유미 박사가 그의 남편 에르베 페조디에 박사와 함께 이어가고 있는 행사다. 부부는 판소리에 관심 있는 현지인들을 모아 워크숍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분들의 노력 덕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판소리 향유층이 생겼습니다. 클래식이나 재즈처럼 판소리를 음악의 한 장르로 받아들이고 즐깁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다면 K-POP 못지않은 판소리 열풍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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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외 저변 확대를 논하기엔 본토인 한국에서도 판소리 대중화의 길은 멀고 멀다. 내내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예이츠 교수는 이 대목에서 전에 없던 확언을 내놨다. “녹음이나 영상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론 판소리의 참맛을 알 수 없어요. 현장에서 직접 소리꾼의 공연을 본다면 분명히 다를 겁니다.” 

단호한 어조에는 현장 공연을 접할 생각조차 않게 하는 ‘국악은 지루하다’는 편견에 대해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예이츠 교수는 최근 ‘범 내려온다’ 열풍을 일으킨 이날치밴드의 활약이 반갑다. 이날치밴드 이전에 씽씽밴드가 퓨전 국악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전통 군악 대취타를 샘플링한 곡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이런 시도들이 지독한 선입견을 허무는 계기가 되지 않겠냐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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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츠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 또한 국악의 현대화 혹은 국악의 대중화와 관련이 깊다. 전통문화인 국악을 계승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국악인의 삶과 업(業)이 그녀의 관심사다. ‘국악인과 패션’, ‘국악인과 SNS’, ‘국악인과 젠더’와 같은 흥미진진한 주제들이 쏟아진다. 그토록 그리웠던 한국에, 그것도 서울대 교수라는 영예와 함께 돌아온 만큼 그는 하고픈 일들이 많다. 연구와 교육, 무엇하나 소홀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동안은 코로나19 탓에 만만치 않았다. 어서 빨리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공연장에서 국악인들을 만나길 고대한다. 배우고 싶은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스승님 계신 곳을 좀 더 자주 찾아가 마음껏 목청을 높이고 싶다. 

“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교육하며 또 배우겠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스승님이 이수하신 ‘흥보가’를 완창까진 아니더라도 연창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원대한 꿈을 품은 듯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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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예이츠가 전하는"

                             단소리 쓴소리

 

                                      단소리

한국인의‘정(情)’은확실히알겠습니다

한국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푸근한 정에 감동하곤한다.단순히지식이나기술을주고받는관계 넘어 ‘스승과 제자’라는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함께하는 국악인들과 교류해온 예이츠 교수는 한국인 ‘정’을 각별히, 생생하게 느꼈다.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요즘도 타지생활이 힘들진 은지,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수시로 살펴보고 챙겨주는 선배·동료 교수들 덕에 한국인의 넉넉한 정을 새삼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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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소리

한국인만의‘한(恨)’이란무엇일까요?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돼 스스로 한국을 찾아온 만큼 예이츠교수는 이곳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 불편하거나 불만스러웠던 기억을 딱히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 다만 판소리를 배우며 접했던주변 반응 가운데 의아했던 있다. 한국인이 품고 있는 ‘한’을 외국인은 절대 수 없을 테니 판소리도 제대로 배울 없을 것이란 얘기다.  ‘한’이란 것도 결국 제각각 체감하는 주관적인 개념인 만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인 모두가 유사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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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교육하며 또 배우겠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스승님이 이수하신 ‘흥보가’를 

완창까진 아니더라도

연창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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