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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주치의,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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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주치의,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습니다


세대마다 추억이나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세대(世代)의 사전 속 의미는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 대략 30년 정도의 시간”이라고 풀이했으니. 현재의 나로부터 ‘한 세대의 시작점’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대략 1990년 그즈음이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살아낸 청춘들도 지금처럼 쉽지 않은 나날이었고, 그 시절 즐겨듣던 노래는 좀처럼 지워 지지 않는다. 30년의 시간, 그렇게 한 세대가 흘렀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 가슴에 새겨진 노래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과마음의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창기 원장을 만나 시절 안부를 묻는다.  

글 이성주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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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시대와 세대를 넘어 공감하는 노래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좋은 노래’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 가까이 놓여 있곤 합니다. 동물원의 노래가 그렇지 않을까요?

어느새 시간이 30년을 훌쩍 넘겼네요. 얼마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동물원 시절의 노래 <혜화동>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가 나왔지요. 인기 드라마에 실린 노래의 파장은 크더군요. 지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반응이 제일 컸는데요. ‘아빠가 그래도 한 때 잘나가던 가수였다는 사실’을 인정받았어요. 

오랜만에 아이들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지요.  <혜화동>은 1988년에 발표한 동물원 2집에 실린 노래입니다. 혜화동은 어릴 때 살던 곳인데. 제겐 고향처럼 향수가 짙게 담겨 있습니다. 

동물원 멤버로 활동하던 시기에 대학로 공연을 마치고 우연히 혜화동을 다시 찾았어요. 어릴 때 넓어 보이던 골목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작아 보이더군요. 그곳에서 뛰놀던 친구들의 얼굴, “내일 또, 다시 만나자”는 가벼운 약속,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무거워지는 것들. 그 틈으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 <혜화동>은 그렇게 만들어졌답니다. 

 

성장하는 동안 잊고 사는 것, 우리는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기억은 때로 왜곡되어 저장되는 특성이 있어요. 더 우세한 기억을 보존 하기 위해 조금 덜 중요한 정보는 작아지거나 잊히는 습성을 지녔지요. 때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실제와 달리 변형되기도 하는데요. 회상할 때 기억은 여러 번 달라집니다. 신경증적인 망각과 왜곡이 끼어들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난 시절은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을까요? 

유소년과 청년 시절,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가 추억하는 기억들의 실제는 조금 다를 수 있거든요. 친구와 다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도 경험하고, 꿈꾸던 일 앞에 주저앉은 순간이 더 많았겠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있잖아요. 

사실과 조금 달라도, 고달픈 우리의 삶에 소울푸드인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이 왜곡됐다면 고마운 왜곡 아닐까요. 팍팍한 인생길에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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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어른이 되는 길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인생이란,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절 여행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해가 바뀌면 계절처럼 세월도 변합니다. 나이테가 하나 더 성장하면, 삶의 무게도 함께 늘어납니다. 계절은 이제 겨울이 한창이고, 우리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겠지요. 이즈음 대부분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우지요. 작심삼일이라도 무언가 시작 하려는 마음,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는 건. 아무래도 괜찮은 일입니다.  

모든 계획은 자기반성으로부터 시작하는데요. 자신을 되돌아보는 능력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건이지 않나 싶네요. 제가 병원 상담실에서 주로 하는 일도 ‘상황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자’고 설득하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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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만히 귀기울여 듣습니다. 그러고는 “지금 당신이 놓인 상황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함께 선택하자”라고 말합니다.

밀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마음의 혼란을 겪고 있어요. 잘 살고 싶다면, 우선 남 탓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를 괴롭히고, 방해하는 근본 원인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실존하는 내가 보이면’, 그다음은 ‘내가 다다르고 싶은 목적지’를 정할 수 있답니다. 크든 작든 목적지가 생기면 내 장단점과 한계점도 보이기 마련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인데, 이때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고,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어요. 자신을 가두었던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 경험의 반복이 조금 더 평온한 삶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새해에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도’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페이스북에 올린 최근 피드를 보니, ‘짧은 물음표’ 하나가 놓여 있더군요.

아,  그래요? 11월 그즈음에 “내가, 내 계절을 잘살고 있나? 난 늘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라고 올렸어요. 가을 낙엽 사진 한 장을 놓아둔 채. 계절 안부일 수도 있고, 인생의 물음표일 수도 있겠네요. 페친들(페이스북 친구들)의 댓글은 “공연을 하세요”라며 응원해 주셨지요. 저도 다른분들처럼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호주머니 안쪽, 그 어딘가에 넣어두고 살거든요.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갈 길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인생의 방향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해도 누군가가 답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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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좋은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해도 지구는 돌고,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겠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감정 과잉과 진영 놀이로 처절하게 분열된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떤 해답을 주고 이견을 조율해 줄 수 있는 너그럽고 현명한 어른은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어른·스승·멘토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정서적 안정과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은 자기 심리학에 서 말하는 ‘거울 전이’ 혹은 ‘인정 전이’,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안정적 애착’ 상태이니까요. 인간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그 어른이 옳다는 언행을 하고, 그 어른을 닮아가며 정서적으로 성숙해지는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거든요. 

좋은 어른이 되려면 성숙한 성격을 지녀야 하지요 그러려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부당한 힘에 대항 할 용기도 있어야 해요. 때론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유머와 융통성도 있어야 하고요. 

훈계보다 들어주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줄 때 존경심이 쌓이겠지요. 현명한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에게도 너그럽고 이타적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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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어른 부재’의 세상을 살아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 잘못은 권위적인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을 몰아내기에 급급했던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싶네요. 나이 든 한 세대가 물러나야만 좋은 세상이 온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권위적인 어른들을 몰아냈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이제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저도 좋은 어른, 최소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그게 생각보다 힘드네요. 요즘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묻고 싶었지만, 꺼내지 않았던 나머지 이야기 

 

지하철 매봉역 1번 출구. 걸어서 5분 거리에 ‘생각과마음의원’이 있다. 이곳에서 김창기 원장은 ‘소아 청소년발달센터’도 함께 운영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핀다. 그가 요즘 하는 일, 대부분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연말이고, 코로나 때문에 진료 상담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원장님이 인터뷰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1주일 정도 병원에 쪽지를 남긴 뒤, 《PEOPLE 365》는 어느 겨울 저녁 8시 무렵 그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모두 퇴근하고 늦은 밤, ‘생각과마음의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마지막 상담을 끝낸 뒤였고, 그 어깨 위에는 하루의 무게감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자신을 ‘소심하고 서툰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서툰 사람을 도와주는 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라고 말한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여전히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길. 그 길에 벗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김광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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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본과 1학년 때 손에서 음악을 놓으려는 그를 향해 김광석은 “너는 노래를 잘 만들잖아? 내가 가수가 되면 네가 ‘내 노래’를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냐?”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룹 ‘동물원’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부터 의사가 아닌, 가수 김창기가 만든 앨범 《평범한 남자의 유치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는 동안 시대와 세대를 넘어 우리가 공감하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2021년 새로운 앨범 《아직도 복잡한 마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부른 노래에는 ‘어떤 뉘앙스’가 담겨 있다. 

그 질감을 표현하기 어려워서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에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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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포크 밴드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1987년 임지훈 1집 타이틀 곡 〈사랑이 썰물〉을 작사·작곡하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8년 ‘동물원’ 1집으로 데뷔하여 〈거리에서〉, 〈혜화동〉,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널 사랑하겠어〉,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주옥같은 노래를 만들었다. 

1997년 ‘동물원’ 탈퇴한 뒤, 현재는 ‘김창기 밴드’의 리더로 공연하면서 2021년 앨범 《아직도 복잡한 마음》을 LP 음반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이면서 도곡동에 있는 ‘생각과마음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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