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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유엔참전용사를 기록하다 - 사진 작가 라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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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 유엔참전용사를 기록하다 


사진 작가 라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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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짐승과 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라는 니체의 말은 인간의 위험적 양면성을 떠올리 수 없는 참혹함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71년 전, 제 나라가 아닌 한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유엔군이 적지 않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어떤 시선과 마음을 놓아두어야 할까? 순전히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솔저 KWV’ 라는 프로젝트를 세우고 자비를 들여 전 세계를 돌며 6·25 참전 용사 1,400여 명의 사진을 찍어온 라미 현 작가를 만났다.

 이성주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희생과 헌신을 카메라에 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부터 1953년 7월 27일 밤 10시 휴전 협정 효력 발생까지, 6·25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무려 2백만 명 이상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민족의 비극으로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 1/5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국가기록원은 한 가족당 1명 이상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기록도 보인다. 유엔군 사망자 5만 8천여 명, 부상자 48만여 명, 실종자와 포로까지 포함하면 총 54만 6천 여명에 달하는 유엔군의 희생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은 22개(전투 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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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역 인근에 있는 아가토스베이비 스튜디오에서 라미 현 작가(이하, 라미 작가)와 인터뷰하기 전, 6·25 전쟁 관련 기록을 찾아봤다. 수십 년 전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보다 더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체감할 수 있는 감정의 온도가 쉽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6·25 전쟁은 우리 기억에서 멀리 놓인 채 조금씩 사라져가는 역사의 한 장일 뿐이었다. 작가는 그런 우리의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를 조금씩 채워 넣는다. 

“2016년 일산 킨텍스 전시장이었어요. 군 관련 기록을 하는 동안 찍은 사진으로 군복 전시를 했는데, 외국 제복을 입은 노신사가 눈에 띄더군요. 조심스레 다가가서 참전용사냐고 물었지요. 자신을 미국 참전용사 '살 스칼레토’라고 소개한 뒤 대화하는데, 그의 눈빛이 자부심으로 가득했어요. 저는 당황했어요. 아니, 왜? 남의 나라 전쟁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저 자긍심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그분의 눈빛에서 읽은 호기심이 '프로젝트 솔저 KWV’의 시작이었지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먹먹했던 건 유엔군으로 참전한 군인들의 평균 나이가 겨우 18살이었다는 거예요.” 

2013년부터 군 관련 기록을 사진과 영상에 담던 작가가 2016년 부터 6·25 전쟁 참전용사로 시선을 옮긴 것은 유엔군으로 참전한 노병과의 우연한 인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 솔저 KWV’는 참전 용사를 찾아가서 군복 입은 그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KWV’는 '코 리아 워 베테랑(Korea War Veteran)’이란 뜻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노병의 눈빛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그가 해야 할 이정표가 되었다. 그날 이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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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오해의 벽, 넘어서면 이해가 생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가 보다,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특히 타자의 시선에서‘왜?’라는 질문이 벽이 될 때, 더욱 그렇다. 어느 땐 추진력도 필요하고 때론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작가가 참전용사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했을 때, 사람들 대부분이“왜?”라고 물으며,“당신이 뭔데! 그런 일을 하느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기관이나 단체, 일반인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국군 참전 용사들도 그랬다. 그 벽이 생각보다 높아서 “내가 추진하는 일이 정말 나의 몫인가?”를 수백 번 되묻곤 했다. 수많은 오해의 벽과 마주 서면, 마음의 동력을 잃는다. 시간도 부족한데, 설득과 이해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우리나라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잘 예우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군인은 그 가치 기준에서 제일 아래 단계에 놓여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넘어서야 할 벽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군에 대한 냉소와 비하’에 있다고 봐요. 군바리라는 비속어가 모든 걸 말해주지요. 물론 군이 지닌 과거의 행적 때문인 줄 알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홀대하고 있다 고 봐요.” 

벽 앞에서 사람들은 몇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벽인줄 모르는 사람, 벽 앞에서 허둥대는 사람, 벽을 피하는 사람, 그리고 벽에다 문을 내거나 넘어서는 사람이다. 라미 작가는 노병의 눈빛에서 읽은‘자긍심’을 잊을 수 없었다. 그분들에게 최소한 '우리가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벽에다 문을 내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6 년부터 영국과 미국을 35차례 방문했고, 어느 때는 한 달에 1~2회를 날아서 유엔군 참전용사가 있는 곳을 방문했다. 물론 모두 사비를 털어서 진행한 일이다. 경비가 부족하면 아끼는 렌즈와 장비 등을 팔아 충당했다.  


우연한 행운,〈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다 

사람들은 잘한 것만 기억하고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이다. 좌절한 것에도 성공의 씨앗은 담겨있다. 무엇인가를 시도한다는 건 경험이 쌓인다는 말과 같다. 그 경험을 실패 쪽으로 놓아두느냐, 아니면 성장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시 달라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의 여신이 한 번쯤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행기에 올랐어요. 버겁기도 했지만 그건 좀 더 노력하면 풀 수 있는 문제였어요. 하지만 참전용사를 찾거나 그들을 위해 도움을 줄 만한 곳에서 답이 없을 때는 막막하더라고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머나먼 길을 날아서 유엔 참전용사를 만나면, 또 에너지가 생겨요. 그분들에게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어느새 노력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서 웃곤 했지요. 얼마 전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어찌 보면 큰 행운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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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지난 1월 1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출연은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수 없이 많은 설명보다 단 한 번의 방송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후원과 자원봉사 관련 문의가 이어졌고, 인스타와 페이스북 등 SNS의 반응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10대와 20대 등 젊은 세대가 관심을 보였고, 여성들의 참여도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참전용사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느껴졌다. 

방송은 유튜브를 통해 널리 퍼졌고, 그 덕분에 타인에게‘프로젝트 솔저 KWV’를 소개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 조직이나 기관 단체 등 수년 동안 진심을 다해 실천한 일에 색안경을 끼고 봤던 그들조차 이해와 공감하는 상황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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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역사를 기록하는  

2023년이면 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는다. 라미 작가는 정전 70주년까지 미처 찾아가지 못한 나라를 방문하여 그분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게 목적이다. 어떤 사진은 하루, 또 다른 사진은 5년이나 10년 혹은 100년까지 남는다.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어떤 의미와 생명력을 갖고 오래도록 남길 원한다. '잊힌 전쟁, 잊힌 참전용사’로서 살아가는 그분들을 기록하는 몫이 어쩌면 그의 사명인지도 모른다.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모든 용사가 기억에 남지만, 그 가운데 유독 가슴에 남아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7년 미국에서 만난 윌리엄 빌 웨버 대령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워싱턴에 가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있어요. 그곳에는 19명의 군인들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윌리엄 빌 웨버 대령이에요. 그는 미국 역사상 남북전쟁 이 후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끝까지 군복무를 한 최초의 군인이지요. 그를 만났을 때, 미안함과 고마움에 말문이 막혔는데. 어깨를 다독이며 그가 한 말 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윌리엄 대령은 6·25 전쟁에 중위로 참전했다. 1950 년 원주 전투에서 수류탄에 팔 하나를 잃고도 14시간을 지휘하며 적과 싸웠다. 지원부대가 도착해서 앰뷸런스에 타고 후방으로 이동하다가 포탄에 또 다리 하나를 잃었다. 기적처럼 생명을 구하고, 이젠 아흔 살이 된 그는 라미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유인은 의무가 있다. 자유를 가진 사람은 자유를 갖지 못한 이들이나 그 자유를 빼앗아 가는 이들과 맞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적을 패배시기키 위해 싸웠으나, 한국전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싸웠다. 내가 비록 몸을 다쳐 움직임이 불편하더라도 나는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활동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더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라.”

그와의 일화를 들려준 뒤 라미 작가는 잠시 어떤 생각에 잠긴 뒤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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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기억하는 건 기록할 수 있어요. 기록하면 그것이 바로 역사예요. 역사는 그 민족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열심히 기록하는 거예요. 과거부터 미래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록자로서 역할’이지요. 능력이 닿는 한 참전용사들을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겨서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잖아요.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눈빛은 달라요. 사진을 찍을 때면 그들의 눈빛이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가요. 그분들이 겪었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거죠. 국가 유공자들을 만나면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꼭 건넸으면 해요. 그분들의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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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 현 작가는

라미스튜디오 대표인 라미 현(현효제, Rami Hyun)사진작가는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나 예술아카데미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 학사학위를,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응용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월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유엔참전용사 기억 감사·평화전’의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한 공적으로 국가보훈처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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