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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가족 채리경.조상운부부 " 가족이란 ? 우리 모두를 위한 ‘나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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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를 위한 "나의 가족"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바꾸려 해서도 안 됩니다.”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인생 수업》 속 문장이다.  

가족처럼 ‘행복을 위한 간섭’이 상시화되는 곳도 드물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가 서로에게 건네는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 때론 깊은 골과 틈을 만든다. 시대가 복잡할수록 가족은 그래서 자꾸 핵처럼 분열하기도 한다. 21년째 삼대(三代)가 모여 사는 곳 사정은 어떨까?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채리경 씨네 가족을 만나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성주 기자  사진 손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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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엄 부부 

“벌써 21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남편의 꿈은 시인이었 어요. 저는 소설가였고요. 우리가 처음 만난 건, 국문학 과 동아리 모임이었지요.”

4월의 어느 날 봄, 뒤풀이 장소에서 남편이 느닷없이 고백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는 리경 씨는 그렇게 시작한 봄날의 사랑이 그해 11월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지금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의 출발점이 됐다고 한다. 채리경(49세)·조상운 (47세) 씨 부부는 20대 중후반에 처 음 만났다. 그해 겨울 신혼살림을 고대 안암동에서 시작했다. 상운 씨 어머님이 운영하는 ‘싱싱식당’이 두 사 람의 신혼집이자 살림터였다. 백반집 한쪽에 있는 작은 방이 낮에는 손님들이 허기를 채우는 곳이었고, 가게 문을 닫은 밤에는 피곤한 몸이 쉴 보금자리였다. 

3년 동안 젊은 부부는 어머니와 함께 하루도 쉴 날 없이 생활과 생계를 같은 공간에서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지요. 한참 젊은 새댁이 눈을 뜨고 감는 곳이 식당이었으니까요.  그 시절 우리에겐 신혼살림이란 것이 없었어요. ‘신혼의 풍경' 그러니까 예쁜 그릇에 밥을 지어 먹고, 아기자기 한 일상이란 게 없었지요.”

인터뷰를 기회 삼아 그 시절의 미안함을 슬쩍 꺼내 놓는 남편 상운 씨. 그 곁에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아내 리경 씨. 두 사람에게 ‘부부’란 어떤 사이일까?  봄날의 고백, 그 주인공 상운 씨의 답은 또렷하고 간결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생각이나 고민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고민이 많다는 건. 어쩌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거든요.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내 인생의 퍼즐’이 비로소 맞춰지는 듯했어요. 그런데 무슨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리경 씨의 생각은 어떨까. 두 사람은 부부가 되기 전 서로 잘 알지 못했지만, 둘만의 어떤 확신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사귄 지 100일이 지나지 않아서 결혼할 수 있었고, 신혼집이 식당 한쪽에 놓인 방 한 칸이어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밀레니엄 부부예요. 세기말을 지나고 2000년은 새로운 시대잖아요. 새로움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21년이란 세월은 우리 둘만의 시간만은 아니에요. 어머님의 시간도 함께 녹아있고, 이젠 예은이와 예진이 쌍둥이의 시간도 그 속에 담겨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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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그 속에 담긴 이름들’의 공간 

“나는 그 말이 참 좋았어. 그 어린 것들이 ‘나를 모시고 산다고 말하지 않고,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으니, 뭐랄까. 먹먹한 게. 그렇더라고….”  어머니 최수자(83세) 씨는 21년 전 딸이 하나 더 생겼다고 했다. 리경 씨다. 늘 듬직했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아들이 어느 날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는 걱정도 앞섰지만 이내 그 생각은 사라졌다. 며느리 될 아이를 처음 보는데. 야무지게 생긴 모습이며, 성글성글한게 왠지 정이 갔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여있을 때 분위기를 보면 사랑과 화목의 척도는 금세 느껴진다. 표정과 온기가 그렇다. 인터뷰 내내 질문과 답이 오고 가는 사이 수십 번이나 눈길을 맞추는 부부가 그렇고. 어머니와 며느리가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장난치는 모습에도 ‘가족의 일상’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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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모여 사니까. 어떤 역할이 각자 있다고 여기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와 아내는 신혼부터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식당 문을 닫고 새벽까지 토론도 많이 했지요. 우리는 그걸 ‘인문학 토론’이라고 지금도 말해요. 크고 작은 문제를 꺼내 놓고, 서로 생각을 주고 받았거든요. 아내와 저는 다른 점도 있지만, 공통점이 많아요. 그 가운데 하나가 ‘각자의 역할을 규정 짓지 않고, 서로의 몫을 남겨놓는 것’이지요.” 

상운 씨의 말이다. 결혼하면 ‘서로 역할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 사람은 조금 달랐다. 그 이유를 조금 더 들어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효자가 되려고 해요. 물론 좋은 마음이지요. 그런데 자신은 변하지 않고 그 행동을 아내에게만 주문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상운 씨는 신혼 때부터 다르더라고요.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 용돈을 챙기는 건, 제가 합니다. 상운 씨는 그게 ‘아내의 몫’이라고 여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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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모여 사는 이 가족들은 서로 각자의 몫을 조금씩 남겨놓는다. 어머니는 어른이니 반드시 이런 걸 해야 한다든가. 며느리는 며느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든가. 남편으로서 할 도리가 있다든가 하는 ‘딱딱한 원칙’은 이 집안에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어머니가 할 몫, 며느리가 할 몫, 남편이 할 몫, 자녀들이 할 몫’을 가만히 놓아둔다고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아침밥을 차리는 것도 그런 방식 가운데 하나다.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느라 늘 바쁜 며느리가 어쩌다 늦잠을 자면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밥을 해놓고 깨운다. 그렇다고 시어머니 며느리에게 눈치를 주는 일도 없고 며느리 또한 주눅 들지 않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맛있게 밥그릇을 비우는 것으로 화답한다. 서로를 소유하려 들지 않고 지지해주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있으니 좋은 게 있어요. 가족끼리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눈을 뜨면 어머님의 건강이나 마음을 바로 살필 수 있으니까요. 한 공간에서 살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어머님이 계신다면, 아마 가끔 묻는 안부에도 걱정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지난해 추석에도 올해 설에도 부모님을 찾아가지 못한 지인들이 많아요. 코로나19가 만들어놓은 언택트 시대지만, 우리 가족과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들린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닐 때 내내 어머니가 아이들 등원과 하원을 도맡아주었다. 초등학생인 지금도 쌍둥이 딸들의 소소한 일상을 일일이 챙겨준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사는 즐거움인 것 같다고 말하는 리경 씨는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날이 많아도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이 또한 3대 가정만의 보너스가 아니겠냐면서 흡족해한다.   

3대가 모여 사니 주변에서는 특별한 어떤 비법이 있지 않을까 묻는 사람도 있단다. 그럴 때마다 상운씨가 그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소유하지 않고 지지하는 마음이 크고 넓으면, 그만한 비법이 또 있을까요? 어머님이나 아내가 저를 소유하지 않고, 지지하는 마음, 예은이와 예진이의 미래를 부모가 소유하지 않고, 지지하는 마음, 저마다 지닌 이름을 불러주면서 응원하는 마음, 그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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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시 〈나의 가족(家族)〉 마지막 시구는 “낡아도 좋은 곳은 사랑뿐이냐”라며 누군가를 향해 물음표 없이 묻는다. 시인의 시에서 ‘나의 가족’은 이른 아침 식구들이 문을 열고 나아가 저녁이 되어 돌아온다. 지친 걸음으로 문을 열면 세상 먼지 가득 묻힌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 그 따뜻한 온기가 놓인 곳에 집이 있고, 그 속에서 가족은 “누구 한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것”이라 했다.  

삼대가 모여 사는 이 집을 나서면서 나는 자꾸, 어릴 때 작아도 불편함 없던 그 시절 가족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발걸음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해가 지고, 밥 짓는 냄새가 여전히 고소한 기억속에 ‘우리 모두를 위한 나의 가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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