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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의 또다른 이름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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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상: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 


디바의 또 다른 이름,

다문화교육자


그가 나타나면 어떤 곳이든 무대는 늘 꽉찬다. 노래 한 마디, 몸짓 하나에 온 힘과 진심을 담아내는 한국 가요계의 유일무이한 디바 인순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있다. 2013년 문을 연 해밀학교 이사장이다. 다문화특성화대안학교인 해밀학교를 설립한 후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운영해오고 있는 그는 다문화교육자로 우뚝 섰다. 가수로서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얻은 그가 다문화 청소년 교육에 시간과 공을 쏟아 붓는 이유를 들어봤다. 

 

글 박창수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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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인순이의 또 다른 이름 ‘김인순 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영원한 디바 인순이. 가수 생활 44주년을 맞이하는 그에게는 ‘디바’라는 두 글자만큼이나 소중한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자리한 다문화학교인 ‘해밀학교’ 김인순 이사장이다. 평소 그가 듣기 좋아하는 이름은 이사장보다는 ‘김인순 쌤’이라는 네 글자다. 

“대학을 다니다 군대 간 친구들도 있고 지금 대학 재학 중인 아이들도 여럿 되죠. 2013년 문을  열어 그간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45명 이나 됩니다. 아이들로부터 안부를 묻는 전화나 문자가 오고 편지를 받을 때면 부자가 된 그런 느낌이죠. 정말 행복합니다.”

학교 얘기만 시작하면 할 말이 많고 또 저절로 신이 난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열정이 밖으로 쏟아내는 에너지라면 대안학교 이사장으로서의 인순 쌤은 감싸 안는 무한 애정의 결정체다.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저도 몰랐어요. 학교를 이끌어간다는 책임이 무겁죠. 하지만 뿌듯합니다. 2017년부터는 문교부로부터 학교로 인정을 받아 졸업장을 안고 학교를 떠나 상급학교인 고등학교에 입학하거든요. 그 후엔 대학생, 직장인, 군인으로 제각각 인생길을 잘

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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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학교는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로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들이 60% 를 차지한다. 올해 19명의 신입생 편입생이 입학하여 전교생 수는 48 명이다. 학생들은 한국어와 엄마 또는 아빠의 나라 언어 2개 국어를 동시에 배우며 공부한다.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한국어반 4개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며 수영, 1인 1악기, 목공, 미술, 코딩, 농업 등 다양한 특활 교육을 병행한다. 이 중에서도 김 이사장이 더욱 애정을 쏟는 것은 농업이다. 

“배추, 무, 고구마 같은 채소들을 키우고 수확하여 판매하는 과정까지 학생들이 직접 관여합니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돈을 버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자연과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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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해밀학교는 전원 기숙형 학교이지만 학비와 기숙사 비용 모두 무료다. 교육부에서 지원받는 비용은 하나도 없다. 운영비의 3분의 1은 후원금으로 충당하지만, 나머지는 온전히 김 이사장의 사재에서 나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열이면 열 모두가 의아해한다. 아무리 유명가수라고는 하지만 상근하는 교사와 직원 수만도 20여 명에 달하니 매달 꼬박 꼬박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책임은 막중하지만 스스로 선택했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서 보람된 일이라는 이유가 있어 후회는 없단다. 되레 희망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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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선배이자 

딸을 키운 엄마이기에 

해밀학교의 출발을 알려면 시계를 12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2010년이었어요. 라디오에서 뉴스를 듣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고교 졸업률이 28%밖에 안 된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어요. 수십 년 전의 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고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다시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사실 부담도 됐어요. 저는 다문화 출신이기도 하지만 엄마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그들의 선배이니까 제가 먼저 다가서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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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도 10대 시절은 갈등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정체성이었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성장통을 겪게 되지만 다문화인이었기에 ‘왜?’ , ‘나는 누구야?’라는 고민과 원망 그리고 갈등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 시절 한때나마 김 이사장은 수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남의 눈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헌신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꿈이었다. 지독하게 마음 아프고 흔들리는 사춘기를 직접 경험했던 만큼 그 시기에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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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수로서 성공했으니까 정체성으로 흔들리는 아이들 곁에 있어 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또 희망과 성공의 아이콘이 될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가장 가까이 서 있고 지켜봐 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학교라는 판단을 내린 거죠”

이듬해인 2011년 그는 가칭 ‘인순이 학교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안학교 설립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개인을 위한 목적이 아닌 사회를 위한 일인 데다 학교 설립과 운영은 까다로운 절차와 지속적인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 일이다. 혼자서는 힘든 일이기에 2012년엔 사단법인 ‘인순이와 좋은 사람들’도 만들었다. 학교설립을 위해 부지를 찾아 여기저기 발품 팔아가면서 찾아다녔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강원도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2013년 지금의 홍천군 명동리 에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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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기는 일반가정의 부모들도 자녀들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하거든요. 우리는 학교만이 아니라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교사들이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강하고 무서운 게 없는 시기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로서는 남모르는 눈물을 쏟아내는 분들도 있어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눈을 맞추며 따져 묻는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찾아요. 일단 소통이 시작된 거니까요.” 


학교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내어놓는 

휴머니스트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어느새 개교 9년째다. 김 이사장은 방송 공연 스케줄만으로도 눈코뜰 새 없지만 수시로 서울과 홍천 해밀학교를 오간다. 잦을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도 가고 아무리 못가도 주 1회는 출근 도장을 찍는다. 교사들과 회의도 하고 학부모들 상담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배우고 뛰고 소통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학교의 지속발전을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이해하고 배우고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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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위해서 코칭 자격증은 물론이고 다문화케어상담사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최근엔 천연비누제조사 자격증도 땄어요. 제 개인을 위한 자격증이라고 하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서죠. 이제 학교 운영을 위한 커리큘럼이나 시스템은 안정됐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영과 학교법인으로서 단단하게 자리매김하려면 앞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재정을 감당하려면 해마다 자신이 가진 것 중 하나씩 처분하지 않으면 불가능 했다. 그러니 해밀학교에 대한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이야말로 학교 운영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후원으로 먼저 손잡아준 단체나 기관을 위해서는 어디든지 직접 찾아가 노래로 감사의 표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원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해외 문화 탐방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원들과의 인연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로 남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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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나는 홍천해밀학교 출신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해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졸업생들이 상급학교에 입학하거나 군에 입대하면 직접 찾아가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라고 응원까지 해주는 김인순 이사장! 제자들이 ‘인순 쌤’하고 전화를 걸어오면 울컥 가슴속 뜨거운 것이 요동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그는 하나도 아니고 두 개를 남기게 됐다. 그만의 노래와 다문화 교육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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