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모래 위의 제왕이 쓰는 삶의 기록

작성자 정보

  • PEOPLE365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천하장사 이만기

 

모래 위의

제왕이 쓰는 삶의 기록


이만기의 이름 앞에는 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모래판 의 황제’, ‘천하장사의 아이콘’, 혹은 한국 씨름의 전설’. 하지만 오늘의 이만기는 그 모든 찬사를 내려놓고 묵묵 히 삶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모래판 위에서 누구보다 단단히 중심을 잡았던 사람. 그는 지금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 제3막을 준비하고 있다.

EDITOR이다영   PHOTO신빛  장소협조모카라비아

 

이만기 표지 2.jpg

 

한라에서 천하장사까지, 모래판의 정점을 걷다

1983년, 만 스무 살의 청년이 한국 씨름 사상 처음 생긴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만기. 그의 이름은 그날 이후 대한민국 씨름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중이 그에게 열광한 이유는 그가 자신보다 두 체급이나 높은 거구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반전의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예상을 뒤엎는 경기 흐름에 관중은 열광했고, 그가 등장하는 경기는 매진을 넘어 좌석 수를 추가 편성해도 부족할 만큼 구름 관중이 몰렸다. 천하장사 10회,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 아직까지 누구도 넘어서지 못한 이 기록은 단순한 횟수가 아니라 씨름판이 대한민국 스포츠를 주름잡았던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당시 씨름은 국가대표 스포츠 이상이었다. 명절마다 전 국민이 TV 앞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고, 아이들은 장래희망에 ‘천하장사’를 적었다. 당시 대통령이 씨름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 시간을 늦춘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기술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고, 경기는 계산적이기보다 본능적이었다. 무엇보다 상대의 중심을 꿰뚫어보는 감각이 뛰어났다. 그렇게 그는 한 시대의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만기 본인은 ”기록은 언젠가 누군가가 깨는 것”이라며 담담하게 말한다. 그에 게 씨름은 단지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 의 태도를 만들고 인생을 이끌어 주는 철학이었다.


이만기4.jpg

 

이름값보다 사람 값, 인생 2막의 기술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는 그는 전성기를 맞이하자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이만기가 향한 곳은 대학 강단이었다. 김해 인제대학교 스포츠헬스케어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그는 수십 년간 후학을 가르쳤다. 운동기술을 넘어 스포츠생리학을 통해 배운 지식과 운동으로 삶의 중심을 잡는 법을 가르쳤다. 한편으로는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이어갔다. 카메라 앞에서도 그 는 늘 ‘천하장사’였다. 하지만 무거운 타이틀 대신 따뜻한 언어와 유쾌한 입담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교양 다큐멘터리에서 전통 스포츠의 가치를 알리고, 예능에서는 선배다운 넉넉함으로 후배들을 끌어안았다.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에서 그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닌 진정성 있는 사람 이만기로 대중에게 다가갔고, 최근에는 현역 선수와 일반인 17명이 씨름판에서 맞붙는 예능 〈샅바전쟁 17대 1〉에도 출연하며 여전히 씨름의 맥을 잇는 든든한 대 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를 단련하는 삶 

이만기의 하루는 여전히 규칙적이다. 젊은 시절처럼 혹독한 훈련을 하진 않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누구보다 잘 읽는다. 취미로 시작해 전문가 수준이 된 서각을 통해 내면의 무게 중심을 다잡는 일에도 서툴지 않다. 삶은 씨름과 같다. 늘 중심을 잡아야 하고, 버텨야 하고, 때로는 밀려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언젠가 이종격투기 등 씨름 외에 자신을 유혹하는 길이 있었 지만 가지 않았던 이유도 자신이 다른 무대에 올라 무너진다면 씨름의 혼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묵묵하게 남아 명맥을 잇는 장인의 정신처럼 이만기의 삶에서도 씨름은 종료된 것이 아니다. 단지 경기장이 바뀌었을 뿐. 이만기라는 이름이 다음 세대에게도 묵묵한 응 원이 되길 바라는 그를 만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만기3.png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KBS 〈동네 한 바퀴〉를 포함해 두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고요, 인제대학교에서 교수로도 여전히 재직 중입니다. 스물아홉 살에 교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제 2년 반 뒤면 정년을 맞게 됩니다. 학교를 정리할 시점이 되다 보니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갈지 많이 생각하고 있고, 인생 3모작을 준비 중입니다.

 

Q. 〈동네 한 바퀴〉를 3년째 진행하고 계시죠. 직접 걸으면서 지역을 탐방하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만 은 않을 것 같은데요. 

A. 맞습니다. 걷는 건 운동하는 것과 또 다른 근육을 쓰는 거거든요. 운동선수 출신이다 보니 몸이 보내는 신호에 누구보다 민감한 편이에요. 지금은 매일 아침 10km 정도 걷습니다. 평소 엔 기본 만 보 이상, 많게는 2만 보까지 걷고요. 〈동네 한 바퀴〉는 진짜 그 동네를 ‘걸어야’ 하니까 촬영이 운동이에요. 그게 또 좋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건강도 챙기고, 땀도 흘리고.

 

Q. 기억에 남는 장소나 인물도 많으실 것 같아요.

A.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정말 많은 동네를 밟았지만, 어디 하나를 딱 고르긴 어려울 만큼 모두 다 소중합니다. 단순히 여행지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듣다 보니 어느 동네든 색깔과 온기가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목포에서 만난 노부부입니다. 아버님이 아흔둘, 어머님이 여든 여섯이셨는데, 어머님께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셨더라고요. “하트는 만들 줄은 모르요~” 하며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연세에도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시도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그 어머님이 해주신 말씀이 참 인상 깊었는데 “자존감은 높여도 되지만, 자존심은 너무 내세 우지 마라.” 그 말이 제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살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존심보다 내 안을 단단히 세우는 자존감이 훨씬 중요하다는 거죠. 또 거제에서 만난 한 어머님은 평생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에서 사셨는데 별장이 생기며 고향에서 밀려나게 되셨대요. 지금은 고향을 바라만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사시는데, 훗날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어요. 짜장면을 한 번도 못 드셔 봤다고 하셔서 제가 짜파게티를 끓여 드리기도 했죠.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 같아요. 신안에 갔을 때는 한 어르신이 성지순례 길을 위해 사유지를 내놓고, 그 길 끝에서 돌아가신 아내의 묘소를 바 라보며 매일 기도하신다고 하더군요. 거기서도 느꼈어요. ‘아, 이 프로그램은 단 순히 길을 걷는 게 아니구나. 사람의 마음을 걷는 거구나.’

 

이만기5.png

 

Q. 본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방송이겠어요. 

A. 〈동네 한 바퀴〉는 저에게 단순한 방송이 아니에요. 지방 곳곳을 찾아가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무대나 맛집 소개 중심이 아니라, 그곳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이잖아요. 이 기록들이 100년 뒤에 보면 대 한민국의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료가 될 거라고 생각해 요. 이 프로그램을 하며 제가 느낀 건 하나예요. “가장 가까운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데, 우리는 그걸 가장 나중에 돌아보게 된다.” 진짜 우리만의 혼이 일상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촬영할 때마다 느끼고 있어요.

 

Q. 진행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통을 잘하 시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A. 진정성이죠.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흘러가듯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문만 주고받는 식이면 삶의 깊은 이야기까지는 못 들어요.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편하게, 때로는 공감하며 이야기해야죠. 그래서 저는 스태프분들께도 시간을 좀 달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너무 급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거죠. 배우도 아니니 대본을 외워서 연기를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악수하고 눈 맞추고 얘기하는 것 모두 진심으로 합니다. 또 전국을 돌며 씨름을 했던 사람이라 각 지역의 말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 편인데 그것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투리가 어려 워서 소통이 안 되거나 그런 게 없거든요. 

 

Q. 초대 천하장사로 씨름의 전성기를 보내셨는데, 씨름이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 진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A. 그게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사실 저희 세대는 씨름의 인기가 천년만년 갈 줄 알았어요. 설날이나 추석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씨름을 봤고, 씨름은 그냥 스포츠가 아니라 명절의 풍경이었잖아요. 국민 스포츠라는 자부심이 있었죠. 시대는 늘 바뀌고 문화도 바뀌는데, 우리는 그 흐름을 너무 늦게 읽었던 것 같아요. 씨름계 내부적으로도 변화에 둔감했던게 사실입니다. 선수와 지도자, 협회 모두가 ‘우리가 잘하고 있으니 계속 잘되겠지’ 하는 안일함이 있었어요. IMF 때 씨름이 큰 타격을 받았고, 글로벌화를 하기가 어려운 종목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씨름이 가진 힘을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도 잘 모르는 옛날 게임을 모티프로 한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 잖아요. 우리가 먼저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아낄 필요가 있다고 봐요. 〈동네 한 바 퀴〉를 진행하면서 지방에 가면 어르신들이 “여기 뭐 볼 게 있나?”라고 하시지만 우리나라 구석구석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거든요. 씨름은 우리 고유의 전통 스포츠이고, 단순한 경기 이상으로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운동이잖아요. 일본 스모처럼 자국민이 더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죠. 

 


이만기 혼합.jpg

Q.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시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A. “다양성과 깊이, 둘 다 놓치지 마라”고 해요. 저희 세대가 한 가지를 깊게 팠지만 다양성이 좀 부족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는 정보는 많은데 깊이가 아쉬운 경우가 많아요. 운동도 마찬가지 입니다. 단순히 움직이는게 아니라 의미 있게 움직여야 해요. 미래의 체육은 스포츠 헬스케어, 기능 중심 운동 등 더 섬세하고 과학적인 방향으로 갈 겁니다. 차에 타면 체중부터 혈압, 혈당, 체내 수분량 등 다 체크해서 알려주는 세상이 될 거예요. 근데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운동은 대신할 수 없거든요. 건강은 약 한 알로 해결되지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과의 미래는 괜 찮다고 봐요. 몸을 관리하는 게 결국 삶을 관리하는 거니까요. 

 

Q. 중년 이후에는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면 좋을까요? 팁이 궁금합니다.

A. 앞서 매일 10km를 걷는다고 했는데,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 합니다. 마음 같아선 500m는 쉽게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르신들 대부분 잘 못 뛰어요. 나이가 들수록 근력과 기능 운동을 해야 하고, 약해지는 균형감각과 관절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 113kg까지 체중이 나갔지만 지금은 94kg 정도 몸무게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몸무게는 거의 매일 체크하고, 조금만 늘어도 식단을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전날 저녁과 아침에 좀 과식했다 싶으면 바로 체중이 반응하거든요. 1kg 정도는 단 하루 만에도 차이가 나요. 그렇다고 무조건 굶거나 절제하는 식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배고플 땐 먹되, 어떤 걸 언제 얼마나 먹을지 잘 조절하면 됩니다. 단백질, 수분 섭취, 염분 조절 같은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려 하고요. 또 요즘은 스마트 워치 같은 디바이스로 수면, 걸음 수, 심박수도 체크하고요. 기술이 도와주는 부분은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이만기7.png

 

Q.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을 꼽 는다면요?

A. 가장 행복했던 건 아무래도 처음 천하장사가 되었을 때 고요. 가장 슬펐던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예요. 영상을 더 많이 찍어 둘 걸 그랬다는 후회도 남고요. 부모님이 계실 때 그 마음을 다 전해 드렸지만, 보고 싶을 때 듣고 싶을 때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게 참 아쉽죠. 이것 빼고는 사람 관계에서 매사 최선을 다해서 별로 후회가 없어요.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고요. 

 

Q. 정년 퇴임이 다가오신다고요. 이후 삶의 계획은 어떤 게 있나요?

A. 저는 10년 단위로 어떻게 살 것인가 목표를 잡고 계획을 세워서 그걸 반드시 이루고자 노력하며 사는데요. 선수 생활부터 대학교수와 방송 활동까지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 왔고 이제 인생 제3막을 준비하는 시기 같아요. 교수 정년 퇴임이 딱 2년 남았거든요. 요즘은 서각을 합니다. 

나무에 글을 새기는 작업인데, 벌써 8년 넘게 하고 있어요. 한국서각협회 이사와 김해지부장도 맡고 있고요. 앞으로 는 이런 예술과 함께 의미 있게 삶의 3막을 채워 가고 싶습 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중심을 지키는 삶을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관련자료

PEOPLE365 TV


이세온의 가요산책


코렌코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