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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백호 "가을이면 떠오르는 사람, 마음이 가을에 젖어들면 생각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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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소환하는 그 사람  -가수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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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떠오르는 사람 ! 

마음이 가을에 젖어들면 생각나는 사람 !



가을을 소환하는 그 사람 !

 

가을이면 떠오르는 사람, 마음이 가을에 젖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노을빛 회한을 깊어가는 가을 강의 가슴처럼 노래하는 가수 최백호다. 허허로이 비워진 마음에 그래도 남아 있는 지나온 아름다운 날의 반짝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건드리는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하고 마침내 눈물지게 하는 남자다. 그의 노래에 들어있는 빛바랜 날들의 추억들은 노래가 끝날 때쯤이면 값진 보석이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가을이면 최백호를 찾는다.

글 김서현 작가, 사진 PEOPLE365 편집부

  

‘내 마음’에서 ‘낭만’까지

 

1막

스무 살 미대 입시생,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1977년이었죠. 첫 음반을 내고 데뷔해서 가수의 길을 걸은 지 어느덧 44년이 흘렀네요.” 가수 최백호! 그동안 수많은 가수들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부침을 거듭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랑받는 노래로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있다. 처음엔 그저 먹고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는 남달랐기에 20대 이른 나이에 톱 가수의 대열에 들면서 단숨에 스타가 된 주인공이다.

그는 1950년 당시엔 동래군 장안면 좌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부산에서 소년기 청년기를 보냈다. 당시 부산은 일본문화나 서양의 문화가 가장 빨리 유입되는 곳이었다. KBS 부산방송국이나 MBC 부산방송국이 생기기 전, 안테나 방향만 맞추면 언제나 일본노래와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영향으로 부산은 새로운 문화 유입이 활발하였다.

항도 고등학교를 다니던 최백호는 시간만 나면 바닷가로 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스무 살 시절 미대 입시를 위해 재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인생길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어머니가 마흔 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그야말로 마음 갈 곳을 잃는 처지가 됐다.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며 꿋꿋이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였다.

 

2막

가수 하수영 씨 눈에 띄어 데뷔

최백호의 슬픔은 컸다. 미대 입시는 남의 일이 되었고 한참 동안 슬픔에 잠겨 방황했다. 그러다 그 상황을 회피하듯 군 입대를 했다. 하지만 불행은 계속 찾아왔다. 군 복무 3년을 해야 하는 시대에 그는 1년 만에 결핵으로 인해 의병 전역을 해야 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고향 바닷가에 방 하나를 얻어 생활했지만, 병을 고치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 시기에 많은 음악을 들으며 지냈고 그 시간 들이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자양분이 된다.

그 후 최백호는 생활을 위해 군 선배의 소개로 극장의 간판을 그리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곳에서 일주일 내내 선 그리는 일만 시키기에 이것도 아니다 싶어 그 일을 그만두었고 그때 마침 친구 매형이 문을 연 통 키타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가수 인생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무명가수로 노래하게 되면서 우연히 훗날〈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인기를 얻게 되는 가수 하수영을 만나게 되었는데 최백호가 허스키하면서도 독창적인 창법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본 하수영은 당시로써는 음악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던 최백호에게 노래하는 법, 악보 보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고 그 뒤에 자신이 인기를 얻게 되자 서울의 서라벌 레코드사에 최백호를 소개하여 1976년 말에 첫 음반을 내게 해준다.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수영 씨와의 우연한 인연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 것도 그렇고 데뷔곡인〈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성공을 거두었던 것도 참 운이 좋았던 거였죠.”

 

첫 음반에 실린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히트를 친데 이어, 1978년에 발표한 〈입영 전야〉도 그 시대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됐다.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군 복무지만 그 시절 국가에 대한 의무와 개인적 삶의 가치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의 심정을 잘 드러낸 노래다.

그의 독특한 창법은 통했다. 데뷔 1년여 만에 톱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1979년에는 세 번째 앨범〈영일만 친구〉가 히트했다. 그 무렵 인기 포크 록 그룹 ‘산울림’, 사랑과 평화, 인기 가수 김만준, 전영 등과 함께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를 휩쓸어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가요를 밀어내고 새바람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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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80년대 초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

남자 가수상 휩쓸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그의 인기는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만든 앨범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야간업소만을 떠돌던 그는 결국 1989년 월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리를 잡고 한인방송 라디오 DJ로 활동을 이어 가던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어요. 1년 정도 노래를 전혀 안 하고 지냈었는데, 노래를 하는데 너무 행복한거에요. 그전에 가수 활동을 할 때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때 ‘아~나는 노래가 천직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4막

미국행 2년 정리 후 그를 무대로 다시 부른 !

‘낭만에 대하여’

결국 1992년 2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와 라이브 클럽공연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미사리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몇 년 동안 재기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다 만든 곡이〈낭만에 대하여>다.

젊었던 시절 어느 날, 비가 쏟아지던 날,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걷다가, 비를 피해 들어간 어느 다방, 구석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마시는데, 텅 빈 다방에 색소폰 음악이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그 연주가 가슴에 와 닿았단다. 에이스 캐논의 〈Laura〉라는 연주곡이었는데 그때 그 곡을 한 스무 번 이상은 들었다고. 그때의 기억을 노래로 만든 게 ‘낭만에 대하여’다.

“이 노래 만들 때, 제가 거실 한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다가, 설거지하는 아내에게 이 노래를 들려줬어요. 그때 아내가 그러더군요. ‘첫사랑 소녀를 못 잊어서 이제는 노래까지 만드는구나.”

중년이 된 40대 중반에 발표한 〈낭만에 대하여〉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삶의 허무와 지나가 버린 청춘에 대한 미련을 담은 노랫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잔잔하게 적셔주었다. 하지만 발표 초기엔 큰 반응이 없었는데 1년 반쯤이 지난 1996년 당시 방영되던 주말드라마〈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해 음반이 35만 장이 팔리는 등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이 곡으로 대한민국 영상음반 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작사 상을 받았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축복받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다시 스타가 됐다.

 

 

■ 최백호의 삶에 대한 물음표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코로나 로 공연도 할 수 없으니 활동이 많이 줄었지요. 아침 7시에 일어나면 두 시간 정도 그림을 그려요. 오후에는 SBS의 낭만시대 방송 준비를 하고 진행을 합니다. 아내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집 주위 변 산책하는데 이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고 즐기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술과 담배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 끊었어요. 콜라를 즐깁니다. 육식을 좋아했지만, 체질상 좋지 않다고 하여 생선과 채소 같은 체질에 맞는 음식으로 바꾸었어요. 그 덕에 몸의 상태도 좋아져 목 상태도 좋아졌어요.

 

‘내려놓음’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마음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죠. 그러면서 편안해졌다고 할까요. 이러한 ‘내려놓음’을 작사와 노래에 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인디밴드와 원로 가수들 후원을 해왔던 ‘뮤지스땅스’ 활동을 내려놓았고 한국음악발전소도 곧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노래 인생에 스승이 있었나요?

송창식 선배입니다. 1972년 즈음 부산 서면에 있는 클럽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송창식 선배도 그곳에 와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는 작곡이 뭔지도 모르면서 송창식 선배노래를 모방하며 노래를 만들곤 했지요. 음악적으로 워낙 대단한 분이고 인간적으로도 아주 훌륭하셔서 존경하는 분입니다.

 

만일 가수가 안 됐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요?

시골 학교 미술 선생님이 되었을 거에요.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음악 시간에 몰래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혼나기도 했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만화에 빠져 살았었는데 미대를 가려고 준비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그래서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

 

마음이 복잡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

자주 찾는 곳이 있나요?

고향 부산 기장에 있는 예전에 다녔던 일광 초등학교죠. 그곳 사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어머니와의 추억,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가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죠. 지금은 폐교가 되어 건물만 남아 있어요.

 

BTS가 한국가요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계적인 가수가 나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죠. 타이밍도 좋았어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몸을 흔들고 싶은, 춤을 추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마이클 잭슨 이후 그 욕구를 채워줄 가수와 음악이 없었죠. 그걸 싸이와 BTS와 건드려 주었고 그렇게 온 세계가 열광하게 된 거죠. 그런 대단한 가수들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다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지요

 

가수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 있습니까?

힘들더라도 꾸준히 새 노래를 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노래는 가수의 생명이죠. 몸의 피와 같은 것입니다. 피가 멈추면 죽듯이 가수는 끊임없이 새로운 노래를 내놓아야만 생명력을 지켜낼 수 있어요.

 

노래 외에 꼭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

무엇인지요?

장사익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는데 나이 더 들면 전국을 두루두루 구경하면서 공연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뒀는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함께 록도 부르고 그렇게 인생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죠. 80을 넘어 90에도 신곡 내고, 콘서트도 열고 싶어요. 그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아 책을 낼 예정이고, SF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도 있어요.

 

내 노래 숨겨진 이야기 하나 -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사모곡으로 부른 노래인데 !

펜들은 연인 사이의 안타까운 이별로 ?

1970년 스무 살 미대(美大) 진학을 꿈꾸며 재수하던 시절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사흘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면서 아파하면서 노트에 일기처럼 적어놓았던 글이 노래 가사가 되었다. 술자리에서 피아니스트이자 무명작곡가였던 최종혁 씨에게 보여줬는데 며칠 후 최종혁 씨가 찾아와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한 노래를 불러줬다.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너무 좋았고 내 글이 노래가 되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노래인데 사람들은 연인 사이의 안타까운 이별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좋아했다.

 

내 노래 숨겨진 이야기 둘- ‘낭만에 대하여’ 

 

김수현 작가의 주말드라마 업고 대히트를 친 노래

1994년 겨울에 발매를 시작한 후 1년 반 동안 1,500장이 채 팔리지 않았던 앨범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음반회사에서 ‘음반이 갑자기 많이 팔려요’라면서 공장을 풀로 돌려야 한다고 전화가 오고, 알고 보니 당시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장용 선생님이 극 중에서 그 노래를 부르신다는 거다. 그 드라마 작가분이 김수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서 어느 날 차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그 대목이 들렸고 운전 기사분에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보라’라고 해서 카세트테이프를 구해서 들으셨단다. 그리고 바로 드라마에 그 노래를 넣은 거다. 그 덕에 그해에 35만 장이 팔렸다.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수현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취재 후 나는-

그는 그냥 맑게 비운 가을 하늘의 모습이었다. 자연스러움을 삶의 준칙으로 살아온 그는 인터뷰 내내 역시 꾸밈이 없었다. 요즘 검진을 받고 있다고 했다. 다른 데 이상은 없는데 기왕력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권고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오늘, 중년에 선 책임과 회한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하루에의 결심을 돋웁니다.’

16집 앨범의 커버 사진에 쓰인 이 말에서, 지난 세월의 모든 아픔이나 이별, 안타까운 사랑, 낡은 옛날의 풍경이나 기억까지도 지나고 보니 아름다운 낭만이라고 느끼는 초연하고 여유 있는 그의 지난날 삶의 자세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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