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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무대' 1부 - "대한민국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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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무대, 대한민국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이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데 노래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특히 ‘대중가요’ 자체가 대한민국 사람들 하루 하루의 삶이고 역사라 할 수 있다. 가요무대는 그 역사를 쓰는 장이다. 한 편의 방송에 100년의 시대상과 인생의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국민 소통과 화합의 장이자 750만 해외동포의 애환을 달래온 가요무대의 제작진과 가요무대 자체로 대변되는 김동건 아나운서를 만나본다. 

온 국민의 감성을 위로해 온 36년의 세월을 따라가 보자.


글 이지영 기자  사진 김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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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_  가요무대를 찾아서


전통가요 명가의 시작점

36년간 방송 횟수가 2021년 12월 20일 기준으로 1,730회를 기록했다. 매회 15명씩만 계산해도  

2만 5천 명이 넘는 출연진들을 자랑하는 가요무대는 1985년 11월 4일 첫 포문을 열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그립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이 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고 또 격조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자는 것이 당시 박현태 사장님의 당부 말씀이었죠.

그래서 프로그램의 간판인 MC가 중요했습니다. 교양 있고 품격 있는 진행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마침 당시 9시 주말 뉴스의 앵커였던 김동건 아나운서가〈우리들 세계>, <주한 외교 사절을 찾아서〉라는 화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때였는데요. 김 아나운서의 지적인 이미지가 다른 음악 프로그램과 차별화도 되고 참신성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서 김 아나운서에게 제안했습니다.” 

1985년 가요무대의 첫 연출자였던 조의진 자문위원의 회상이다. 담당 피디가 된 이후에는 가수들에게 노출 자제와 정장 차림의 의상을 요청했고 자신의 노래가 아닌 옛 노래를 불러야 하는 가수들의 노력에 대한 감사로 방송계에서는 최초로 분장실에 커피와 간식을 사비로 준비해놓을 만큼 프로그램에 열성이었다는 조 위원. 우리 가요에 대한 사랑과 프로그램에 대한 그의 열정은 36년이 지난 2021년에 와서도 그를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가요무대와 함께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추억의 노래와 추억의 가수들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시청자들이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 할까를 심도 있게 고민하  

고, 가수는 무조건 원곡 가수를 섭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 원칙은 36년이 지난 지금도 마

찬가지다. 그러나 원곡 가수를 섭외하기가 난감한 경우가 많았는데 신카나리아 선생은 안산에까지 찾아가서 섭외했었고 가수 윤복희도 케이크를 사 들고 강남에 있는 집으로 찾아가서 섭외했다고 한다. 또 〈아내의 노래〉를 불렀던 심연옥 선생은 미국에 살던 때 섭외를 했었고 

<한많은 대동강〉을 부른 가수 손인호, 〈38선의 봄〉을 불렀던 가수 최갑석 등도 어렵게 섭외가 되었는데 섭외가 어려울수록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져 갔다. 

원곡 가수 섭외가 불가능하다면 노래의 기교보다는 원곡의 정서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후배 가수를 섭외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방송 1회 때의 일이다. 당시 신인가수였던 주현미가 이미자 씨 옆에 서 있었는데 이미자 씨 노래 

를 2곡을 불렀다. 많이 긴장하고 떨렸겠지만, 끝까지 잘 불러주자 이미자 씨가 “내 대를 이을 가 

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단다. 1회 때라 출연자 선정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

를 구가하던 가수 조용필은 〈산장의 여인〉을, 가수 조영남은 〈애모의 노래〉 등을 불렀다. 

인기 최정상의 가수가 자기 노래를 하지 않고 요구에 맞추어준 배려와 의리가 밑받침되어 가요무대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간혹 구하기 어려운 영상은 당시 부산에 가면 ‘정부기록보존소’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작고한 가수의 영상이나 인기가수들의 데뷔 초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서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찾아낸 고 고복수, 이난영, 박시춘 선생의 영상과 인기절정기의 현인, 고운봉의 모습 또 이미자 씨의 신인 때 모습 등은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목숨 걸고 촬영한 첫 해외무대 ‘리비아 대수로 

공사 근로자 독려 공연’

가요무대 해외공연은 화려한 출연진 등의 특집구성으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중 첫 해외 공연이었던 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근로자 독려 공연은 가장 기록적인 공연으로 남아있다. 당시동아건설에서 협찬하여 사하라 사막 건설현장 세 군데서 녹화하게 되었다.  

방송녹화 시 필요한 중계차를 비행기에 싣고 갈수가 없어 부품별로 따로 비행기에 싣고 도착해서 다시 조립해 중계차를 만들어 방송해야 했던 어려운 녹화현장이었다. 게다가 낮 기온은 40도가 넘고 조명 시설이 없어서 낮과 밤에는 녹화를 못 하고 아침 8시에 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ENG 카메라 3대로 현장 전체를 찍어야 하고 더욱이 모래바람 때문에 세트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대가 모래에 다 파묻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텝 한 명이 온몸을 천으로 칭칭 감고 물안경을 쓰고 간신히 세트가 넘어지지 않게 밤새 세트를 붙잡고 지켜준 덕에 다행히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목숨 걸고 세트를 지킨 투혼이 빛나는 녹화현장이었다. 

리비아 현장으로 파견되면 3년 동안은 고향에 올 수가 없었다. 가족과 떨어져서 무조건 3년 동안은 생이별해야 했다. 어떻게 근로자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전할까 고민 끝에 제작진들은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떠나온 가장을 섭외하고 그 가족들의 영상을 촬영해서 보여주기로 했다. 한강 둔치 아래에서 촬영한 아내와 어린 아들의 모습을 본 가장과 현장의 근로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리고 약 10년 후에 그 영상에 나왔던 아들이 십대가 되었을 때 다시 한번 그 사연의 주인공들을 조명해서 감동을 선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유찬욱 PD의 열정으로 〈광복 50주년 연속기획 20부작 가요무대〉가 1995년 한국방송대상TV 연예 오락부문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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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을 하루처럼, 날마다 새롭고 싶은 가요 무 

수십 년을 같은 시간, 같은 틀 속에서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가 일쑤다. 한  

때 시청률 30%를 구가하던 개그콘서트가 폐지되었듯이 오랜 역사를 지녔고 정해진 틀을 가진 방송이란 것 그 자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겐 위험요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때는 창조성의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조 자문위원, 수신료가 40년 동안 동결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구성의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뻔해 보이는 구성에서 탈피해야 한단다. 가령 봄철이면 으레 예상되는 봄 노래보다는 ‘봄과 여심’ 이라는 주제로 살랑이는 여성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도 선정해보고 단순히 여름보다는 ‘여름과 바다 사나이’로 주제를 확장해보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가을은 고독이나 여행 등 계절감이 속에서 재생산해낼 수 있는 다른 주제를 덧붙여서 곡선택의 외연을 넓혀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만들었을 때와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단다. 라디오 사연 신청 코너에서 영감을 얻은 신청곡 코너가 그렇다. 가요무대의 상징이 되기도 한 신청곡 코너는 특히 재외동포들에게 많은 편지를 받을 만큼 인기가 높다. 750만 재외동포들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가요무대의 중요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다. 


좋은 노래 백과사전

요즘은 코로나로 제대로 된 녹화를 할 수가 없어서 가요무대의 상징 같은 의미인 방청객들이 같 

이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 일명 ‘리액션 샷’을 찍을 수는 없지만 주옥같은 명곡을 듣고 알아간다 

는 것에 감사드린다는 원종재 PD.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앙꼬 없는 찐빵’처럼 무관중으로 녹화를 이어가지만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시청자에게 새롭게 다가갈 것인가를 연구하면서 혹시라도 좋은 노래 중에 잊혀진 노래가 있는지를 발굴하는 작업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가요무대를 들을수록 좋은 옛 노래들을 조목조목 다 들어 볼 수가 있어서 ‘좋은 노래 백과사전’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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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가요무대" 배턴을 이어받은 원종재 PD>


“옛 노래 중에 훌륭하고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참 행복한 일이죠. 그런 곡들을 잘 찾아내서 매 

회 한 곡씩이라도 방송해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죠. 오 

랜 시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덕분에 그 바통이 저한테까지 왔는 

데 다음 주자에게 잘 전달해 주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중장년층의 시청자들이 주요 시청자층이기에 주로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중견 PD들이 맡아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가요무대다. 그만큼 인생의 경륜이 묻어나 노래의 맛을 알 정도의 내공을 가진 사람들이 심도 있게 우려내는 사골곰국 같은 음악 프로그램이란다. 그리고 다행히 1회 때부터의 기록이 KBS 본부에 다 남아있다고 하니 가요무대의 역사를 보며 우리 가요사의 맥을 짚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2년 전에 배턴을 이어받은 원종재 PD는 코로나로 인한 녹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도 오랜 세 

월 여러 사람의 열정으로 국민의 애환을 달래 온거목 같은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책임 PD로서 

의 자부심과 의지가 역력히 드러났다.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신청곡도 보내주시고 방청도 해주시고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제대로 된 연출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시청자들의 사랑이 있는한 가요무대는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제가 가요무대 PD가 되었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하셨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부모세대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가요무대일 거

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 어려운 시기가 빨리 지나가서 옛날처럼 방송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

졌으면 합니다. 그때까지 다들 건강관리 잘하셔서 함께 박수 치며 웃으며 녹화장에서 다시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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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무대의 첫 연출자였던 조의진 자문위원>




"가요무대 -대한민국의 마음을 어루만지다"

(2022년 1월 KBS 가요무대 피디와의 인터뷰) 편이 1부, 2부로 해서 기재합니다.


2부 "가요무대의 얼굴 김동건 아나운서" 편이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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